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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남도 구월산 삼성사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 역시 우리가 아직은 가보지 못하고 있는 중요 유적중에 하나입니다.
그런 중요 유적을 이렇게 밖에 자료를 남기지 못함을 애석하게 생각하며,
언제고 직접 답사를 해서 올릴 수 있는 그 날을 꿈꾸며 자료를 정리해서 올립니다.



사진 출처 : 단군봉찬회 | 지극히 주관적인 세상 네이어블로그


구월산 삼성사

단군께서 백두 천산에 나리셔서 93년 동안 세상 인간을 바로 다스리는 이화세계의 본을 보이시고 사람을 서로 사랑케 하고 유익케 하는 홍익인간의 길을 여신 뒤 경자년 음력 3월 15일에 이르러 문화 구월산에서 한울에 오르시니 뒷날 이 땅에 돌집을 지어 [어천대]라 했다.

단군님께서 이 세상에 계신지가 217년이요 임금의 자리에 계신지가 93년 동안이시다. 그 후 첫째 아드님 부루(扶婁)태자에게 치화를 맡기시고 한울에 오르셨다. [구월산]하면 두 가지 면에서 역사적 의의를 생각 할 수 있다. 그 첫째는 단군께서 한울에 오르신 거룩한 어천(御天)과 둘째는 그 단군님의 성업을 기리는 삼성사, 즉 제사를 지내는 사당(祠堂)이다

가. 삼성사의 역사

1) 고려지
문화군에 있는 구월산은 속담에 아사달 산이라 하였는데 아사는 우리말로 아홉과 음이 비슷하며 달은 월(月)과 음이 같은 아사달 산, 곧 구월산이라 하였다. 이조 시대에는 삼성사를 지키기 위하여 관원을 파견하고 매달 1, 15일에 분향(焚香)하고 봄과 가을에는 제향(祭享)을 지내었다.

2) 관서승람
구월산 밑 성당리에 소증산이 있으며 환인 환웅 환검을 모신 삼성사가 있다. 삼성당을 평양으로 옮긴 뒤로 비록 국가에서는 제사를 지내 주지 않아도 비를 빌 때나 개이기를 빌 때 현관이 조복을 갖추어 입고 친히 제사를 지내는데 제사에는 흰떡, 흰밥, 폐백, 과실을 올리고 고을 풍속에 영험이 있다고 하여 백성들은 감히 제사지내지 못했다.

3) 성종실록
조선 태종 때에 삼성사를 폐하여 평양 단군 묘에 합쳤더니 황해도 안에 나쁜 병이 번져서 여러 해 동안 없어지지 않았다. 삼성당 아래 인가가 많았으나 제사를 폐지한 뒤로부터 나쁜 병이 시작되어 인가가 텅 비게 되었다. 백성들이 모두 이르기를 삼성단을 평양으로 옮겨 설치하고 제사도 지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뒤에 나쁜 병이 일기 시작하였다...... 고기(古記)에 단군이 아사달 산으로 들어가서 신이 되었다고 하니 이는 지금의 황해도 구월산이옵니다. 여기에 그 사당이 있고 또 이보다 먼저 향을 내리고 제사 지냈었사오니 청컨데 백성들의 기원에 따라서 평양 단군대에 예(禮)에 의하여 매년 봄과 가을에 향과 축문을 내려서 제사 지내게 하옵소서....

4) 제왕운기
환인 환웅 환검의 삼신을 모신 사당이다.

5) 중광 60년사 (대종교)
홍암 대종사가 제자들을 데리고 삼성사에 도착하셔서 우거진 풀을 뽑고 당실을 수리하고 동서북 3벽에 떼어서 따로 모셨던 삼신(三神)위비(位卑)를 삼신일체의 진리대로 북쪽 벽에다 중앙에는 환인(桓因)천제(天帝)를, 그 왼편에는 환웅(桓雄)천왕(天王)을, 그 오른편에는 환검(桓儉)인종(人倧)을 모셨다.
본래 삼성사 신위는 처음에 토상(土像)을 모셨다가 뒤에 목상(木像)으로 바꾸었는데 조선 태종 대왕 때에 하륜의 건의 따라 위패(位牌)로 고쳐 모신 것이다. 구월산 대왕과 토지신의 위패는 대종사께서 친히 다시 써서 사당 뜰 위에 모시었다. 그 후 대종사께서 많은 유서와 거룩한 순명삼조(殉命三條)를 남기시고 조천 하신 곳이 바로 구월산 삼성사이다.

6) 춘관통고
조선 성종 3년 임진에 삼성당을 고쳐서 삼성사라 하여 환인 환웅 단군 위패를 받들어 모시고 평양 단군 묘의 예에 의하여 해마다 향(香)과 축문(祝文)을 보내어 제사를 지냈다.

7) 문원보불
조선 정조가 삼성사를 중수하고 제사를 지냈으니 그 글에 말하기를 옛일을 상고해 보니 삼성께서 우리나라에 오시어 천지의 시초를 여시었다. 저 단옥이여 그 빛이 무궁히 열리리로다라 했고 정조 5년에 또 제사를 지냈는데 그 글에 말하기를
아아 ! 장하시도다 단군이시여 ! 맨 먼저 우리나라에 나시었네 덕(德)은 신명에 합하고 운수는 천지의 시초를 여시었네 그 상서로움을 펴시고 밝은 하늘 명령 받으셨네

나. 삼성사의 성시

동해에 성인이 나시니
일찊이 듣건데 요와 한때라 했네
산초에 있는 곳에 사당이 있어
박달나무에 상서로운 구름이 둘렀네
- 조선 숙종 -

단군께서 제사 지내는 일 동쪽 땅에 이어졌으니
소나무 빽빽히 사당을 가리웠네
삼한의 다섯 도읍 어찌 시끄러운가
이분이 곧 조선의 시조일세
- 명나라 설정총 -

삼성사 산에 있는 중이
바람을 날려 산에서 내려오니
눈 밑의 푸른 바다 금시에 비어 있네
황해도 가에 사당에 모시니
만년 동안 아름다운 기운이 가득하네
- 추 곡 -

위의 역사와 성시를 통해서 단군님을 모시던 우리 조상들의 거룩한 자취를 찾아 볼 수 있다.
오늘날에 삼성사의 모습은 어떻게 보존되고 있는지 그리워질 뿐이다.

자료출처 : dangoon.org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에 모셔져 있는 환인,황웅,단군왕검의 천진
사진출처 : 한국 천부경 뇌집중 우주진리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

구월산은 황해도 신천군 용진면과 은율군 남부면․일도면 등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 954m로 국내 4대 명산 가운데 하나다. 최고봉은 사왕봉(사황봉)으로 이곳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동남쪽으로 안악․신천․재령 등 평야지대와 서북쪽으로 넓은 황해와 평남 남포까지도 시야에 들어온다.

옛날에 단군이 수도를 평양에 정했다가 이곳에 옮기고 수천 년간 다스렸다고 전한다. 구월산 남쪽 기슭의 맑은 시내인 구월천을 따라 내려가면 신천군 초리면 달천리에 달천온천이 있다. 달천온천 동북쪽에 문화유씨 유릉(선조묘)이 있고, 그 부근에 유응두(柳應斗)가 자주 찾던 묵방사(墨坊寺)가 있었는데, 유릉을 지키는 묵방재로 변했다 한다. 유응두는 당대 석학으로《단기고사》를 중국에서 처음 입수했던 이로 잘 알려져 있다.

구월산에는 단군에 관한 영적이 곳곳에 있는데, 환인․환웅․단군 세 성인을 제사지내는 ‘삼성사’, 단군이 올라가 나라의 지리를 살폈다는 ‘단군대’가 있다. 단군대에서 내려와 산 동쪽 신천군 용진면 패엽리에 신라 시대 창건한 패엽사가 나온다. 패엽사에서 내려오면 삼성리가 있고, 삼성리를 지나면 전동(殿洞)이란 작은 마을이 있다. 전동의 유래는 동내에 삼성사 삼성전(三聖殿)이 있어서인데, 옛날에는 성당리(聖堂里)라 했다. 이 전동에서 서쪽으로 4km 지점에 앉은 듯이 슬며시 솟은 청수한 토산이 삼성사가 있는 삼성봉이다. 1947년에 조성된 구월저수지(면적 3.18㎢)가 이곳에서 남쪽 약 6km지점에 있다.

기록에 의하면, 조선조 태종 당년에 삼성사를 철폐하고, 평양 단군묘에 합치하자 황해도 내에 악질이 만연했다. 성종 때에 이르러 단군사의 소재와 사당을 옮긴 이유 등을 조사하게 되자 임진년 2월 황해도 관찰사 이예의 계(啓)에, “구월산 사우가 패엽사 서쪽, 대증산 임불찰 뒤에 있었는데 그 뒤 절 아래의 소봉에 옮기고 또 소증산으로 옮겼다 하였으며, 삼성당 내의 감실 모양을 그린 것을 초해 보면, 단인천왕은 남향이오, 단웅천왕은 서향이오, 단군천왕 동향으로 함께 위패를 모셨습니다. 속전에 옛날에는 모두 목상이었는데, 태종조에 하륜이 여러 사당의 목상을 혁파할 것을 건의하여 삼성의 목상도 또한 예(例)에 따라 파하였다 하며, 의물(儀物)의 설치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하였다.

조선조에서 최후에 삼성사를 중수한 것은 1902년으로 일제 강점 이후 허물어져가던 삼성사를 다시 복원한 것은 그 뒤 14년이 지나서다. 1916년 음력 8월 4일 나철은 김두봉을 비롯한 시봉자 6명을 데리고 서울을 출발하여 8월 6일 삼성사에 도착하였다.

이튿날 삼성사를 복원한 나철은 15일 오전 1시부터 2시 반까지 1시간 반에 걸쳐 천제를 지냈다. 그리고 ‘하늘을 위해, 인류를 위해, 대종교를 위해’ 밤 11시 30분 수행의 최고 경지인 폐기법으로써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

삼성사는 나철의 순명 조천(朝天) 다음해 군에서 공매하여 천도교 교당을 짓는데 활용되고 그 터만 남고 말았다 한다.
1994년 10월 북한은 평양에 단군릉을 준공한 이후 이듬해 11월 묘향산의 단군사를 복원하는 등 단군 유적 복구에 주력하여 2000년 9월 복원시켰다. 실로 84년 만의 일이다. 복원된 삼성사의 총 건평은 165.2㎡이며, 기본건물인 삼성전을 축으로 하여 좌우측에 영빈당과 양현당, 그 아래에 마주 서 있는 전사청과 숙사, 배집지붕 형식의 대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북측이 2002년 10월 삼성사를 남한에 공개하여, 15대 이영재 총전교가 1916년 이후 첫 참배에 참석했다.

외래사상의 난무 속에 정체성을 상실해 가는 요즘, 민족 성지 숭령전과 삼성사의 역사적․종교적 의미를 새기고 국난극복과 조국통일의 힘찬 원동력을 찾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자료 출처 : 대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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